운명처럼 너와 난 어른이 되어
그 세상을 떠났지만
영원히 네 곁을 지킬게
너와 다른 우주에서
우재(WOOJAE), <우주 왈츠 (With. 정우)>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래서 봄이 되기 전에 다 쓰려고 했던 건데.
아무튼, 어느새 마지막 오타루 당일치기 여행만을 남겨 둔 자라.
11. 돌다리는 두드려 보자. 슬쩍 보고 도망가지 말고
감회가 새로운 날이었다.
일어나자마자 그간의 여행을 짧게 되짚어 보았다. 구시로와 오비히로에 다녀온 게 정말 오래된 일 같았다.
이번 여행은 내 평소 일상과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즉흥이라 그런가. 아 물론, 비슷한 패턴이래도 물리적인 위치가 달라지다 보니 전혀 다른 귀중한 경험을 했던 건 사실이다. 그냥, 나를 좀 아는 사람이 내가 홋카이도에 갔다는 걸 들었을 때 '얘는 이러고 다니겠지' 하는 모습 그대로이지 않았나.
이 날 하루만 빼고. 오타루는 작은 관광지니까, 걷기보다는 쉴 생각이었다.
그리고 랩실 분들을 포함한 많은 지인들이 오타루의 사진을 굉장히 기대하고 계셨기 때문에(...) 약간 특파원의 마음가짐도 갖고 있었다.
사진 잘 찍어올게요, 뭐 그런.
사실상 여행 마지막 날인데 돈이 좀 많이 남았다.
아니 매 끼 식비를 평균 천오백엔 정도 썼는데 왜 이렇게 많이 남았나 싶었는데 생각해보니까 식비 말고는 딱히 쓴 곳이 없었다.
하필 또 가져온 가방이 메고 온 천 가방 하나 뿐이라 남는 돈으로 기념품을 사가기도 애매했다.
그래도 뭐, 오타루는 관광지니까 쓸 곳이 많겠지.
스포하자면, 기념품 없이 정말로 하루만에 저 돈을 다 썼다.
이 날 점심으로 결정한 메뉴는 저번에 미뤄둔 장어덮밥(우나쥬). 장어덮밥 이라길래 히쓰마부시를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우나쥬를 하는 식당이었다.
아무튼 근처만 가도 냄새로 손님들을 끌어모으는 식당인데다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아 오픈런을 치지 않으면 대기가 한참이라길래, 조금 일찍 도착할 요량으로 방을 나왔다. 대충 츄리닝 주워 입고서 짐도 없이 그냥 맨 몸으로 나오니 입만 다물고 있으면 어디 집앞에 마실나온 현지인 같았다.
목적지는 구글에 '삿포로 장어덮밥' 만 검색해도 바로 나오는 '카도야'.
11시가 좀 넘어서까지 문 앞에 '준비중' 팻말이 붙어 있길래, 아 평일이라 좀 늦게 문을 여나보다 생각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계속 '준비중'이 걸려 있길래 시간이 아까워 잠깐 어디 좀 다녀오자 싶었다.
돈도 많이 남았고, 첫날 봤던 오목눈이 인형이 자꾸 어른거려서 가까운 김에 그거나 사오기로 했다.
삿포로 TV 타워에는 견학온 유치원 아가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어느 나라나 애기들 너무 귀여움 볼 짜부시키고 싶음
이 오목눈이는 이제 자라의 가방에 대롱대롱 매달려 다니고 있답니다.
아이쇼핑 좀 하다가 다시 카도야로 돌아간 게 12시가 조금 안되었을 때인데 아직도 준비중 팻말이 붙어 있었다.
이 때 뭔가 이상하다 느낌이 왔고, 혹시 몰라 문을 살짝 열어보니... 문 안쪽에 이미 웨이팅 줄이 있었다.
'준비중' 한자를 몰랐다면 그냥 들어가 봤을텐데.
아니 그냥 오픈 시간에 요 앞에 있었으니까 문이라도 열어볼 걸.
오타루로 가는 기차는 1시가 조금 안돼서 예약이 되어 있는데, 여기서 장어덮밥을 먹으면 무조건 그 기차를 놓칠 것 같았다.
한 10초정도 고민했다. 대기 명단에 이름을 적었다.
어차피 레일패스가 있으니까, 오타루는 그냥 대충 아무거나 잡아 타고 가면 되지 뭘. 오래 갈 것도 아니고 굳이 지정석이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음식은 한국에 돌아가면 평생 다음이 없을 지도 모른다.
TMI) 말이 그렇지, 가능하면 삿포로에서 오타루를 갈 때는 열차의 오른쪽으로 맘편하게 지정석을 예약해두자. 오른쪽으로 바다가 지나간다. 난 태평양을 실컷 봐서 특별한 감흥이 없었지만, 삿포로-오타루 근교로 여행을 계획중이라면 바다 풍경은 꼭꼭 챙기자.
분명 웨이팅 대기 명단을 영어로 적었는데, 자연스럽게 생존 일본어로 대답하면서 들어와서 그랬는지 직원분께서 일본어 메뉴판을 가져다 주셨다. 여기 영어 메뉴판이 있다고 들었는데.
근데 정작 메뉴판을 보니 뭐가 뭔지 알 것 같아서 그냥 주문했다.
글자는 못 읽지만 가격보면 대충 사이즈 나오지않나.
주문한 메뉴는 장어 한마리 반 짜리, 그러니까 저 4180엔 메뉴였다.
먼저 저 오른쪽 위의 야채에 산초를 촥 뿌리고 소스를 끼얹은 뒤 한 젓가락 덥썩 집어먹어 입맛을 돋워 주었다.
밥 자체에도 적당히 간이 되어 있었고, 장어는 젓가락이 닿는 대로 부드럽게 잘렸다. 가시가 있긴 한 것 같았는데, 충분히 익어서 그런지 젓가락으로 만질 때나 씹을 때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비히로의 부타동마냥 꽤 짭짤할 줄 알았지만, 간이 의외로 많이 쎄지 않았고 오히려 담백한 느낌이었다. 밥 반찬으로 적절한 정도였고, 양념 맛보다 고기 자체의 부드러운 식감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자극적이지 않아서 장어 양이 꽤 많은데도 먹으면서도 전혀 물리지 않았다.
내가 삿포로에 산다면 (그리고 수입이 좀 되는 편이라면) 자주 와서 먹고 싶은 맛이었다.
식사를 마칠 때 쯤 입가심으로 나온 말차. 따뜻하게 속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JR 홋카이도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열차 시간을 확인해 봤다.
오타루로 가는 열차는 역시나 자주 있었다. 원래 타려고 했던 열차 시간보다 30분쯤 뒤에 보통 열차가 하나 있었다.
그걸 타고 가면 오타루에서 머무는 시간은 5시간 반 정도. 그 정도면 충분히 볼 만큼 다 보지 않을까 싶었다.
아직도 식당에는 웨이팅이 꽤 있었다. 냅다 스미마셍 오칸죠 오네가이시마스.
오타루로 가는 일반 열차 분위기는 딱 1호선 그 자체였다.
서울에서 어디 근처에 무슨 일 있어서 전철타고 가는 느낌.
원래 계획은, 오타루 역에서 내려서 아래쪽으로 쭉 내려와 오르골당까지 찍고 다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반 열차를 탄 김에 생각해보니 굳이 오타루역까지 갈 필요가 없었고, 오히려 오르골당에 가까운 건 미나미오타루(남 오타루) 역이었다.
열차가 미나미오타루 역에 멈춰섰다. 퇴근길, 유튜브 쇼츠 보다가 환승역을 놓칠뻔 한 사람처럼 충동적으로 후다닥 내려 버렸다.
12. 니 전공은 파퓰러 부전공도 파퓨훌러
미나미오타루역 앞은 생각보다 더 조용했다.
지도로만 보면 관광지 복판일 것 같았는데 의외로 취향인 동네를 만나버렸다.
진짜 이런 동네에서 갑자기 오르골당같은 유명한 관광지가 나온다고?
GPS가 살짝 맛탱이가 갔나 반신반의 하면서도, 주변에 지표로 삼을 만한 건물도 없고 믿을 건 내 영혼의 반쪽 구글 지도밖에 없었다.
의심해서 미안해 내 반쪽 !
점심시간이 막 지나서 그런가 생각보다 북적북적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마 식사 후에 르타오같은 곳에 다들 들어가신 게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오타루에서 꼭 반드시 들러봐야겠다 하는 곳은 두 군데가 있었다.
이 오르골당과 스테인드글라스 박물관. 후자의 경우는 친구에게 추천을 받았는데, 조용해서 좋다고.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구시로나 오비히로에 갔을 때와는 달리 오타루는 오기 전에 조사를 정말 하나도 안해봤다. 어차피 사람들 많은 곳이 거기서 거기일텐데 하는 마음으로 마실나온 느낌. 그래서였나, 대놓고 "나 오르골당이예요" 처럼 생기지는 않은 이 건물을 무심코 지나칠 뻔 했다.
입장 !
첫 감상. 이런 것 보고 잘 감동하지 않는 편인데 진성으로 '헉' 소리가 나왔다.
아니 요즘 왤케 나 인간이 몽글몽글해진 것 같지. 따뜻한 조명에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오르골 음악 소리가 너무 예뻤다.
천 몇백엔 짜리가 있길래 살까 말까 고민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하나 사올걸 그랬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대부분의 제품은 판매용보다는 그냥 판매를 겸한 전시용처럼 보였다. 굳이 잘 파는 게 목적이 아닌 듯 한 느낌.
사진은 이렇지만 꽤 오래 있었다. 테이블마다 하나 하나 다 돌려보면서 소리도 들어보고, 여유가 있었던 날이라 다행이었다.
2층 올라가는 길. 사실 1층만 해도 충분히 볼 거리가 많아서 '대체 뭐가 더 있는 걸까' 하는 마음으로 올라가봤다.
잘 안보이니 대신 읽어 드립니다. "스위스 제, 638,000엔" 등.
돌다 보니 백만 엔 단위의 오르골 들도 판매하고 있었다. 내부에서는 동영상 촬영이나 녹음만을 제한하고 있었지만, 괜히 보기만 해도 닳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카메라고 뭐고 정말 조심조심 움직였다.
근데 확실히 앤틱 감성이 고급진 맛이 다르긴 한 것 같다. 1층과는 공간의 공기부터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아 그냥 자본주의 감성이었으려나.
2층이 그렇다고 다 고급진 상품만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니었고.
오르골이 아닌 다른 기념품들도 판매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에 들어온 회색 뚱땡이
지금은 다른 분야에 정착하셨지만, 영상 매체 관련해서 초등학교나 교육센터 같은 곳에서 시간강사를 하셨던 어머니를 따라서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지브리 영화를 보면서 자라왔다. 하울이나 치히로는 물론이고, <추억은 방울방울>이나 <이웃집 야마다군> 처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이 아닌 지브리 영화도 다 봤을 정도...긴 한데 솔직히 엄청난 팬까지는 아니긴 해. 그냥 토토로로 대변되는 지브리 캐릭터들을 보면 어렸을 적에 그 캐릭터를 처음 보고 느꼈던 감정들이, 그리고 그때의 분위기가 내 안에서 확 살아나는 기분이라 종종 그리울 때 꺼내보곤 한다.
물론 다 좋은 감정들인 건 아니다. (정확히는 아니지만 대충 지브리 작품으로 치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처음 봤던 미취학아동 시절 즈음엔 오무가 달려가는 모습이 그렇게 징그럽고 무서워서 보지도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거의 20년이 지나고 나서야 큰 맘 먹고 다시 본 나우시카가 꽤나 방대한 스케일의 세계관을 자랑하는 수작이었다는 걸, 그리고 오무도 보다 보니까 귀여운 구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론. 그래서 3층으로 올라가봤다.
치히로는 거즘 풀타임으로만 10번 정도 본 것 같다. 심지어 대학 새내기때 들었던 교양 과목에서는 시험범위였다.
가오나시는 영화로 볼 때마다 인상이 달라진다. 딱히 좋아하진 않는데, 영화 속 인물을 딱 한 명과 대화해 볼 수 있다면 가오나시일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오시라사마, 그 초반에 치히로의 조력자로 나오는 허연 뚱땡이(신)다. 결말 장면에서 부채들고 덩실덩실 춤추는 게 너무 귀여워서.
예, 저 지브리 작품 중에서 모노노케히메를 제일 좋아합니다.
주조연들 비주얼도 비주얼인데 연출과 스토리가 정말 취향에 잘 맞아서요. 이야기의 주요 세력들 중 절대 선이나 절대 악이 없다는 게 너무 설득력이 있지 않나요.
(바로 아래 문단에만 모노노케히메의 간접 스포일러)
어릴 적 처음 봤을 땐 들은 대로 당연히(그리고 단순히) "자연과 인간의 대결, 인간의 욕심으로 자연을 해치면 안돼 !" 가 주제인 줄 알았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 몇 번 더 보다 보니 그게 아니라는 것. 들개들(+산)과 멧돼지나 원숭이들, 에보시와 타타라 마을, 아시타카, 그리고 사슴신까지 각각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상징성을 확실히 부여하면서도 결국 그 누구도 승리하지 못하는 결말. 그래서 자칫 자연과 인간의 철 지난 대결구도로만 읽힐 수 있었음에도 곱씹어보면 왜 세대를 관통하는 수작이라는 평을 받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마지막 엔딩곡, "아시타카의 전설"의 오케스트라 버전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고 저 엽서를 사기 위해 지갑을 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작품 자체가 캐릭터 상품화 하기가 쉽지 않아서 다행이다.
시간도 넉넉하겠다, 여유롭게 오르골당 관람을 마치고 나와보니 거리에 사람이 많아졌다.
춥지도 않고, 걸어다니기 딱 좋은 날씨였다. 바람은 좀 불었지만.
한국인답게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르타오...를 본점이든 파토스든 들러야하나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이 인간이 디저트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혼자 여행할 때 까지 그런 ☆★☆핫 플레이스★☆★ 에 들르고 싶지는 않았다. 날씨가 좋으니 일단 걸어 보기로 했다.
이래봬도 르타오 본점.
마치 뇌빼고 다른 데 보면서 지나가다가 '어 이게 르타오 본점이야?' 하고 사진은 찍으려는데 다시 몇 걸음 돌아가서 각 잡고 찍을 정도로 중요하게 남길만한 기록은 아니라서 대충 카메라만 들이댄 것 같이 나온 사진인데 그거 맞음
겉으로 보기에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물론 들어가보지는 않아서 안은 어땠을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밟히기도 했고 바람도 불어서 그런지, 조금만 뇌를 빼고 걸으면 바로 넘어질 정도로 정말 미끄러웠다.
거의 1분 마다 한 분씩 넘어지는 걸 본 듯.
르타오의 대체재로 선택한 롯카테이.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 그리고 르타오까지는 아니지만 관광지 특유의 북적북적함을 보고 싶어서 가봤다.
의외로, 내가 너무 예상치를 높게 잡고 있어서 그랬는지 선물용 과자의 가격이 나름 합리적인 편이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것들도 있고 좀 사갈까 했지만 뭐 주변에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냥 구경만 했다.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려 했는데 아이스크림이 안 된단다.
안타까워하는 와중에 눈에 들어온 게 롯카테이 슈크림 빵. 이것도 꽤 유명하다고 본 것 같아서 덥썩 같이 계산했다.
네, 뭐, 그래요, 맛은 있었어요. 근데 우리가 아는 그 맛임.
커피는 그냥 군대에서 말년의 아침을 덜 뭣같이 시작하기 위해, 일과 시작 전에 한 잔씩 들이키던 믹스 두 개 넣은 카누 비슷한 느낌.
특별할 건 없었고, 롯카테이의 좌석 층에는 사람이 많지도 않아서 빈 자리가 많았는데, 유리 너머 아래층에는 열심히 선물을 고르는 단체 관광객들의 북적거림이 있고, 한 발짝 물러서서 그걸 바라보는 느낌이 썩 좋았다.
야박한 맛 평가와는 다르게 의외로 꽤 오래 앉아 있었는데,
커피를 주문하면 같이 준비해 주는 과자인데 이거 꽤 맛있다. 솔직히 추가로 돈을 주고 산 슈크림보다 이게 맛있었음.
물론, 그래도 보이는 그런 맛이긴 하다.
혼자 다니는 여행을 좋아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그만큼 집에서 재충전하는 시간을 꼭 가져야 하는 나로서는 (거의) 처음으로 인기 관광지의 소음이 꽤 괜찮았다. 최근 몇 년, 아니 정확히는 한 반 년 정도는 내가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인상을 많이 지워버리는 시간이 됐다. 좀 더 어렸을 때의 난 MBTI에 필요 이상으로 과몰입하는 사람처럼 '나는 이런 성격의 사람이니 이럴 땐 이렇게 행동해야 해' 하는 기준이 행동에 과하게 영향을 줬던 것 같다. 본인을 조각하는 사람처럼 내가 나라는 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그걸 그만둔 게 반 년 정도 된 것 같다.
일단 억지로 하는 연락을 그만 두었다. 나를 만들어 보여줘야 할 사람을 정리하는 것 부터 시작했다. 이제는 구태여 없는 할 말을 만들어 대화를 이어가지 않아도 언제든 서로를 봐줄 수 있는 고마운 사람들이 나에게도 한두명 쯤은 있음을 알기에.
그리고 스스로 솔직해졌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스스로에게 그 말을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는데 (물론 지금도 어렵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해보고 나니 일상의 빛깔이 바뀌었음을 느낀다. 안그래도 복잡할 일이 많은데 일상만큼은 내 맘대로 해도 되지 않겠냐.
그 여유만큼을 주변에 온전히 쏟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오만한 생각에 빠져서는 안되겠지만, 나름대로 또 한번의 상승 기류를 맞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근데 나 뭐하다가 이 얘기를 쓰고 있지.
오타루의 상가들이 모여있는 큰 길의 옆 길이다.
한 숨 정도 더 여유가 있는 예쁜 가게들이 많았다. 유리 공예 제품, 램프, 우유 아이스크림, ...
...아이스크림 ?
홋카이도까지 와서 우유를 안 먹어보는 건 말이 안되지.
"북일초자삼호관" 인 것 같은데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다. 자료 조사의 부재.
일본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와 이야기하다 알게 된건데 일본어에서는 같은 한자를 읽는 발음이 굉장히 많다고.
저 '초자' 라는 글자는 그대로 읽으면 '가라스' 도 되고 '쇼우코' 도 되고 '쇼우시' 도 되고 뭐 그렇단다. 일본어 공부 절망편.
그건 그렇다 치고 창가 자리에서 바깥을 보면 차분하니 좋을 것 같아서 냅다 머리부터 들이밀었다.
아이스 커피와 넘버투 메뉴인 스트롱 밀크 소프트콘을 주문했다.
아니 방금 커피 마시고 나온 거 아님 ?
빽사이즈 앗!메리카노와 메가리카노를 물처럼 마시는 한국인에게 일본의 커피 한 잔은 너무도 적었다.
아 이게 아무래도 이 때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너무나 오랜만에 먹어서 보정이 된 것 같기도 한데, 원래 이게 이렇게 맛있었나 싶었다.
내가 디저트류를 잘 먹지 않는 이유가 단 맛을 별로 안좋아해서 그런 건데, 내가 기억하는 소프트콘의 붕붕 뜬 설탕 맛(?)이 아니라 부드러움+약간 단 맛이라서 괜찮았던 것 같기도 하다.
혼자 대문짝만한 통유리 자리에서 저러고 아이스크림+커피에다가 캠퍼스 고양이마냥 나른함을 즐기고 있으니 아무래도 광고 효과가 있었나보다. 한 10분 정도만에 나랑 눈 마주치고 들어오신 5분 정도의 가족 손님이 두 팀, 중년 커플 여행객 손님 한 팀이 들어오셔서 금세 만석이 되었다.
이 날은 원래 가려고 했던 스테인드글라스 박물관의 휴관일이었던지라, 한참을 앉아 있으면서 다음 목적지를 정했다.
오타루 운하의 포토스팟까지 가는 길에, 옆으로 살짝만 빠지면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신사가 있다고 한다.
약간의 언덕을 5분 정도만 올라가면 있다고 하니,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들러보자 싶었다.
남은 커피를 단숨에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13. 아쉬움이 남는다는 건 그만큼 잘 된 여행이라는 것
슬슬 해가 기울기 시작할 듯 말 듯 하고 있었다.
지도로는 오타루 스이텐구 신사로 빠지는 길이 작은 길은 아닌데, 아무리 찾아봐도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럴 때 의심되는 건 역시,
빙 돌아 가는 길이 있긴 한데 소요 시간이 10분 정도 늘어났다.
하지만 이 시끌벅적한 오타루에서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라고 하니, 찾아갈 수 밖에 없었다.
어느새 발걸음은 오타루 운하, 오타루 역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마 오타루역에서 내려서 관광을 시작한다면 이걸 먼저 보고 출발했겠지만...
아무래도 운하가 여기다 보니, 역사를 잘 모르긴 하다만 삿포로가 거기 있는 이유가 되었겠지.
슬슬 구름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람도. 점점 '이게 물가의 밤바람이다 !' 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사진과는 다르게 별로 춥거나 하지 않았지만, 노면이 점점 미끄러워지는 게 문제였다.
왜냐면, 바로 위의 마지막 사진을 쪼그려 앉아서 찍었는데, 일어나려다가 발이 미끄러져 넘어졌거든.
그 짧은 순간에 바로 누가 말 걸면 중국어로 대답할 말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는 중국어라곤 '밥 먹었냐' 밖에 없었다.
스이텐구 신사를 위해 오타루 운하의 일몰은 포기할 각오도 하고 있었다.
지도를 보아하니 신사는 날이 어두워지면 올라가지 못할 것 같았다.
사진으로 보기에는 한 대여섯시 정도 돼 보이지만 이 때가 한 4시정도 됐었나. 저녁이 되면서 구름이 끼기 시작해 갑자기 확 어두워졌다.
해지기 전에 다녀와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이거 100프로 언다.
아무리 고생 끝에 훌륭한 장소에 도착한다지만, 아무래도 혼자 여행 난이도를 자꾸만 올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드디어) 들었다.
내려올 때는 어디서 포대나 박스 같은 것만 하나 주워오면 편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신사까지 올라오는 멀쩡한 계단의 큰 길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건 저 좁은 길과 경사를 조심조심 5분 정도 올라온 후였다.
스이(물)텐(하늘)구, 하늘과 물이 기가 막힌 오타루에 딱 맞는 이름이었다.
어, 중간에 많이 과정이 잘리긴 했지만 경사가 생각보다 많이 가팔라 몇 번이나 미끄러져 넘어질 뻔 했다.
사진이 없는 건 양 손으로 언제든 땅을 짚을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겨울의 스이텐구 신사는 선뜻 가보라고 추천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계단인데 계단이 안보여.
진짜 저 밑에서부터 올라오면서는 온갖 욕을 속으로 해대긴 했지만 결국 그 모든 고난이 미화가 될 만한 미경이었다.
고요한 밤하늘의 산 능선 너머로 달이 떠오르는 것 처럼 시선 위로 차분히 모습을 드러내는 신사 건물과 아무도 밟지 않은 눈 평원은 잔잔하기 그지 없었고, 이전에 태평양을 처음 봤을 때처럼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뭔가 마법같은 경로로 오타루가 아닌 다른 세계에 잠깐 잘못 들어온 것 같았다.
이걸 또 폰 카메라라서 담지를 못하네. 물론 무거운 장비를 주렁주렁 메고 올라올 만한 길은 절대절대절대 아니었다.
놀랍게도 이 장소는
사실 눈밭에 파뭍힌 신사의 모습에 너무나도 매료된 나머지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모습은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구시로에서 태평양을 찍고 오는 동안 이것 만큼 차분하고 좋았던 마을의 설경을 원없이 보기도 했으니.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즈음이었다.
여기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귀 옆에서 "아노-" 하며 일본어가 들려왔다.
혼자 오신 젊은 남성 여행객 분이셨는데, 내가 일본어를 못한다고 하니 영어로 말을 걸어 오셨다. 오타루에 함께 오신 일행이 있기는 한데, 너무 답답해서 그냥 혼자 움직이시다가 여기까지 올라오셨다고. 계단에 나 있던 손바닥 자국의 주인이셨다.
신사 주변의 벤치도 눈에 파뭍혀 어디 앉을 곳도 없었지만, 둥실둥실 흐르는 섬의 끝자락을 바라보면서 한참을 대화를 나눴다.
서로의 여행을 기원하고, 드디어 이제는 제발 좀 오타루 운하를 보러 갈 시간이었다.
열심히 빨빨거리며 돌아다닌 덕분에 적당히 운하에서 일몰을 보고, 미리 봐두었던 현지인 식당에서 스시로 저녁을 느긋하게 먹은 뒤 삿포로로 돌아가면 딱 맞을 시간이었다.
마음에 여유가 더해져서 그랬는지, 의외로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 만큼 힘들고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 내려가보는 것도 좋은 여행이라 했었던가.
스이텐구 신사까지 쉽게 올라오는 본래의 길이 열려 있었다면 시끌벅적한 오타루의 이런 조용한 면은 보지 못했겠지.
오타루 운하까지 가는 길에 지나친 박물관 팻말. 휴관일이라지만 왠지 딱히 아쉽진 않았다.
심지어 미리 가보려고 계획해 둔 곳이었는데도.
훌쩍 도착해버린 오타루 운하.
자세히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정면에 보이는 저 멀리의 또다른 다리가 보통 유명한 스팟이다.
오타루역에서 쭉 내려오면 저쪽이거든. 그러니까, 조용한 곳을 찾아 한 블럭을 더 걸어온 것이다.
아마 이곳이 보통 관광으로 오는 오타루 지역의 가장 끝인 듯 했다. 오타루에서 가장 예쁜 장소인 것 같은데, 나 밖에 없었다.
유리로 유명한 오타루에는 그 이전에 투명한 물이 있었다. 그 새 조금 개인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이 거울에 반사되는 모양을 한참 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이토록 찬 광경을 보는 게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슬 여행이 끝나간다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아쉬움은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아직 일본에 와서 스시를 먹지 않았다 !
5시는 진즉에 넘었으니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내가 찾아둔 식당은 오타루 역 쪽으로 조금 올라가야 있었다. 큰 길가는 아니었고, 골목을 잘 찾아서 들어가야 했다.
현지인들이 찾는 노포 느낌의 스시집이라고 듣긴 했지만, 사실 스시 맛이 한국 고급 식당과 뭐 얼마나 다르겠어 싶었다.
나름 어렸을 때부터 여수, 무안, 영광, 부안, 포항 등 전국 온갖 바다를 돌며 해산물을 먹어왔던지라 해산물에 대한 기준이 높은 자라였다.
찾아간 곳은 "미요후쿠" 라는 이름의 식당.
외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외국어가 통하지 않는 곳이고, 큰 길가에 있는 식당이 아니라 찾아 들어가야 했다.
구시로에서 외국어가 안통해서 쩔쩔매던 게 불과 며칠 전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곤방와 - 히토리데스 - " 하며 식당 문을 열었다.
딱 1인석 한 자리를 빼고는 만석이었다. 정신없이 북적거려서 얼른 자리에 앉아 특 메뉴와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메뉴판은... 그냥 주인장 옆에 나무로 된 판때기 하나가 있었다. 특, 상, 생 세 가지 메뉴 뿐이고, 철이나 날 따라서 구성이 바뀌는 것 같았다.
TMI) 아, 이 식당은 테이블이라고는 4인석 정도 크기 하나 밖에 없다.
저기, 주인장 앞에 준비된 신선한 재료들이 보이는가.
주문이 들어감과 동시에 바로 초밥을 쥐기 시작하셨는데, 알지는 못하지만 장인의 손길이었다.
시원하게 맥주를 좀 들이키고 있으니 금방 요리가 준비되었다.
뭐가 뭔지는 물어봐도 모르겠지 싶어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비린 맛은 전혀 없었고 신선한 맛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성게(우니), 개인적으로 군함초밥은 좀 퍽퍽해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촉촉하고 맛있었다. 일본의 바다 음식의 강점은 생선도 생선이지만 알이나 이런 종류에서 더 도드라지는 것 같았다.
독특하게 생긴 계란초밥은 저게 한 개다. 당연히 한 번에 먹기는 힘든 크기라, 다른 초밥 먼저 다 먹고 남은 맥주의 안주로 잘게 쪼개어 먹었다.
사실 스시의 맛도 맛이지만 가게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정말 조그마한 가게에서 사장님 내외 두 분만 비좁고 시끄러운 손님들 틈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식당인데 괜히 나도 그들 사이에 섞여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사장님 표정이 특히, 만화에서만 보던 그런 표정이었다. 사람 좋은 동네 아저씨 스타일.
주변에 있던 다른 손님들이 한 두팀씩 빠져나갈 때마다 식당에 공간이 훅훅 생겨났다. 대부분의(두 세팀 정도?) 손님들이 빠져나갔을 때 무렵에 나도 계산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타루 운하의 포토 스팟을 한 번쯤은 찍어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삿포로로 돌아가는 기차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좀 있었다.
바깥은 완전한 어둠이 내려 앉았다.
그럼에도 오타루역 근처는 이제 막 도착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문득 나에게는 지난 날을 돌이켜보는 이 시간이 이 분들에게는 설렘이 움트는 시간이라는 게 재미있었다.
앞으로의 날들도 그렇겠지.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영어가 섞여 들려오는 소음을 음악 삼아 운하를 따라 쭉 걸었다.
여행의 아쉬움은 항상 마지막 날의 전 날에 찾아 오는 것 같다.
왁자지껄 우당탕탕 시작한 여행이었지만, 그런 완벽하지 않은 모습이 여행의 중간 중간을 다채롭게 꾸며 주었다.
뭐, 좀 나중의 일이지만 한국에 돌아오고 봄이 된 이후에 누군가는 혼자서 홋카이도 끝자락까지 다녀온 여행을 끝마친 소회를 물어보기도 했다. 멋진 말을 기대했을 그 누군가에겐 미안하게 됐지만,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에게 이번 여행은 "의미를 찾지 않는 일을 만들기 위해" 떠난 것이었다. 왜 홋카이도냐, 그냥. 왜 6일간이냐, 그냥. 홋카이도는 대게가 유명하다는데 왜 안먹고 왔냐, 그냥. 안 그래도 나는 내가 일상에서 숨쉬는 동안 마주하는 모든 일들에 의미를 부여해야만 하는데, 이 여행에서까지도 의미와 교훈을 두고 싶지 않았다. 수학여행이나 연수가 아니라 여행이지 않은가. 혹자의 이야기처럼 여행과 같은 다른 사건에서 얻어온 경험에 비추어 삶을 살아가는 것도 좋겠지만, 나는 그냥 그 순간 역시 우리 일상과 다르게 생각할 것이 없는, 조금 '낯선 평범함' 으로 그려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좋았어." 라는 세 글자로 대답해 주었다.
아, 단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확실히 무언가 자신감은 얻은 것 같다. 항상 입에 달고 사는 말인 '일단 지옥 불구덩이에 떨어지면 못할 일은 없다' 를 조금 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달까.
그래도 이번 여행 중 가장 좋았던 건 구시로에서 본 태평양의 모습, 그리고 오타루에서 본 스이텐구 신사가 처음 시야에 들어오던 순간. 두 장면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둘 다 본래 계획했던 몇 안되는 일정이 박살나서 급하게 대체한 일정이었다.
음, 더 말이 필요할까.
삿포로에 돌아가서는 마지막 삿포로 클래식 한 캔으로 (맥주와의)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14.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이 밝았다.
비행기 시간은 14시 55분, 뭐 숙소에서 공항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니 적당히 점심을 먹고 출발할 생각이었다.
메뉴는 이번에 한 번도 먹을 생각조차도 하지 않은 라멘, 그냥 부담 없이 그럭저럭한 메뉴라서 그렇게 정했다.
우선 패스 5일권의 이용 기간이 끝났기에 비지정석 편도 티켓을 구매했다.
이 티켓의 경우 삿포로역의 무인 발권기 "아무데서나" 그냥 구매하면 된다. 엄청 길게 줄을 서있는 기계가 따로 있었는데 그거 다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발권은 일본어로 되어 있어도 목적지만 잘 찍은 뒤에는 눈치만 있으면 쉽게 구매할 수 있다.
할 일도 다 끝냈겠다, 점심을 먹으러 출발했다.
삿포로역 바로 옆에 있는 에스타(ESTA) 백화점의 10층에 라멘을 테마로 식당이 몰려 있다고 해서 대충 거기로 가기로 했다. 뭐 얼마나 어마어마한 맛집을 갈 것도 아니고.
삿포로역에서 남쪽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가든 지하로 잘 찾아가든 해서 ESTA 건물로 넘어가면 우선 지하에 푸드코트가 있다.
슬슬 11시가 다 되어갔기 때문에 식당들이 하나 둘씩 오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으로 올라갔다.
대충 백화점 꼭대기 층에 있을 만한 식당가 느낌인데, 라멘집이 정말 많지만 사람은 그 이상으로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막 삿포로역에 내려서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일본 하면 라멘이지 !" 하면서 오셨을 것 같은 여행객 손님들이 정말 많았다.
어떻게 알았긴, 에스타 10층은 사람 반 캐리어 반이었다.
삿포로 역에 딸려 있는 식당답게 한영 메뉴판도 제공되었다.
내가 주문한 것은 미소 차슈라멘, 아무래도 저녁은 공항까지 전철 40분+비행기 3시간+전철 1시간 반을 타고 집에 도착한 이후에 먹어야 하니 점심을 든든히 먹어 두었다.
보다시피 '굉장해! 특별해! 역시 일본!' 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 라멘 맛이다.
다만 숙주가 충분히 들어간 점,
차슈가 맛있었던 점,
(매우 중요) 아지타마고가 무료였던 점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요즘 계란 한 판 사면서도 행사 없이는 '비싸다...' 하는 자취생의 시선에서 계란이 공짜라니, 하지만 지성인 답게 매너를 지켜 한 개만 까먹고 왔다.
사실 매너는 개뿔 그냥 계란 많이 먹으면 이따 배가 좀 심상치 않을 것 같아서 무서웠다.
이 다음 사진이 바로 공항 사진이었다면 좋을 뻔 했으나...
잘 가던 기차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40분 가량을 움직이지 않았다.
나야 미리 체크인도 해뒀고 두 시간 정도 여유를 두고 나와서 망정이지만, 안내 방송도 일본어로만 나와서 이게 뭔가 하고 있었다. 아니, 무슨 폭설이 내린 것도 아니고 지금 눈이 오는 것도 아닌데.
TMI) 이런 경우, JR 트위터나 구글 지도의 길찾기 기능, 혹은 JR 홈페이지에서 열차 지연 및 취소 사유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에는 없지만 JR 홈페이지의 경우 얼마나 지연되는 중인지, 이후 열차들의 스케줄은 어떻게 되는지 등 더 자세한 정보를 한국어로 확인할 수 있으니 가급적이면 홈페이지에 들어가보자.
JR 홈페이지도 들어가보니 그냥 차량 점검이란다.
그래 열차 사고나는 것보다야 천천히 가는 게 낫지만... 급하신 분들도 계셨을텐데 무엇때문에 점검하는 건지, 상황이 어떻게 되는 건지 정확한 안내도 뭣도 없는 건 조금 답답하다 싶었다. 당장 내려서 택시를 타야 할지 고민되는 상황이라고 쳐도 정보가 아무것도 없어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무튼 여행 마지막 날에도 이벤트가 생기다니 !
뭐, 이렇게 잘 다녀왔다.
되게 잔잔한 여행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 기준) 그렇게 잔잔하지만은 않고 나름대로 재밌는 사건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것 말고는, ... 딱히 다른 감상은 없다. 이미 다 써버린 것도 있고.
그저 대단한 감상이 필요 없는, 그렇게 의미 부여까지 할 정도로 대단해야 하는 건 아닌 그냥 "나에게만은 좋은 시간" 이었다.
삶에서 동떨어져 있는 빅 이벤트가 아닌, 그냥 나라는 사람이 살고 있는 연속된 시간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2023년 2월 23일 서울, 집에 돌아오자마자 치킨을 시킨 자라는 콜라를 들이부으며 반 마리 정도 집어 먹더니 금방 곯아 떨어졌다.
You're my rosen,
영원히 이렇게 머물러 지친 하루 틈을 메우고
함께해주오
내 노래가 되어주오
참솜(Chansom), <Rosen>
걸리적 여행기 홋카이도 편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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