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마, 겨울은 춥고 힘들고, 뭐 그런기다.
아무리 따시게 날라 캐봤자 겨울은 겨울인기라.
<오, 여정> 부산 편.
최근 애완 돌멩이를 기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관리할 필요가 없으면서도 뭔가 같이 사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싶었다. 이별같은 걸 걱정할 필요도 없고.
전세사기.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가장 핫한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이미 사회에 나와있는 사람들부터, 이제 막 사회로 나가야 할 사람들도 물론. 꽤나 많은 사람들에게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단어일 것이다.
나도 뭐, 물론 아직까지 잘 대처가 되고 있긴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 몇 가지를 포기하고 이사를 반 년 정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부디 잘 되기를 바랄 뿐이다.
올해 생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행인지 생일에 혼자 있진 않았다. 집주인을 만났다. 아니, 집주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만났다. 자세한 건 공개적인 공간에 밝히긴 좀 그렇지만 무슨 막장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전개가 눈앞에서 펼쳐졌다. 나는 평소 기가 쎈 편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인간이 화가 나면서 상대방에게 좋지 않은 사적인 감정이 들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기존쎄들의 행동이 나올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별로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뭐, 이후로 법원에 필요한 조치를 모두 마친 뒤, 이번에는 본업에 문제가 생겼다. 그동안 본업에 있어서도 나름 소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를 중단시켰다. 속도전이긴 하지만, 내실을 다시 한 번 다지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끌고가는 주제인 만큼 내 마음이 편해야 할 것 같았다. 저번 주의 일이다. 주인님도 동의하셨고, 프로젝트는 내일, 그러니까 월요일에 다시 한 번 얘기해보는 쪽으로 우선 마무리를 지었다.
주말이 편치 않았다. 토요일은 하루종일 잤다. 전날에 술을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해장이 필요한 속 상태였다. 사실 앞으로 남은 큰 일은 없다. 지금도 큰일이 난 건 아니다. 앞으로 정신만 똑바로 차린다면 더 잘 될 일만 남았다. 아는데, 다 아는데 마음이 지쳤다. 사람이랑 그만 싸우고 싶다.
오늘, 그러니까 1월 21일 점심을 먹다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숙소를 잡았다. 기차는 좀 예매가 힘들 것 같은데 다행히 자리가 있었다. 그리고 두 시간쯤 뒤 난 짐을 싸고 있었다. 또 다시 강릉행이었다.

강릉 바다는 종종 온다. 연에 한 번씩은 혼자 오는 것 같다. 매번 경포호나 강문해변 쪽이긴 하다. 물론 집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라면 서해일텐데 왠지 동해가 차분하고 좋다.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다. 일상에서 그만큼 멀리 벗어나는 느낌이라서 그럴까.

사실 혹시 몰라 내일 돌아오는 차편을 예매하긴 했지만, 수틀리면 하루정도 더 머물고 화요일쯤에 돌아갈까 싶기도 한다. 아직 서울로 돌아가지 않아 결말이 어찌될지는 모른다.
사실 이번 강릉은 여행기라기보단 휴식기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어디 명소를 가거나, 바다를 걷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그럴 예정이 더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도 뭐랄까, 여행을 정리하는 의미라기보다는 오랜만에 글을 써보고 싶어서 쓰는 게 크다.

뭐 직장인인 이런 분들보다 돈은 없어도 (전공 특성상) 시간은 있으니 그걸 누리자는 마음이긴 하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서울역으로 출발했다.
강릉가는 기차는 서울역을 기점으로 청량리를 거쳐서 양평으로 넘어가는데 우리집에선 청량리역이 훨씬 가깝다. 그럼에도 서울역으로 간 이유는 뭐냐,
청량리역에서 타면 된다는 사실을 까먹어서다. 젠장ㅋㅋ
서울역에는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다. 간만에 예전에 살던 동네좀 둘러보려고 일부러 일찍 나왔다.

비온다ㅋㅋ
이 바보같은 놈은 집에서 창밖에 비가 오는걸 보면서도 서울역은 비가 안올거라고 생각했나보다.
뭐 별 수 있나, 맞고 다니기엔 약간 부담시러워서 우선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막 쏟아지는 것도 아니니까 조금 있으면 그치겠지.

그새 서울역에 이상한 게 생겼다. 뭐 있나 둘러봤지만 그냥 식당가 + 애매한 포토스팟이 전부길래 그냥 나왔다.
지난 달에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다. 거즘 6년만의 가족여행이자 두 번째 가족 해외여행이었다.
엄마 딸이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여러번 말했지만, 한국에서 해치울 수 있는 예약이나 일정을 다 해치워버렸다 (놀랍게도 엄마 딸은 P가 70퍼, 나는 J가 80퍼다).
난 현장 담당이었다. 영어가 필요하거나 뭔가 깡따구가 필요한 일에 몸으로 때우는 역할이었다 (엄마딸 이 별로 친하지도 않은 인간이 뭔 일만 생기면 "야 자라야 가서 좀 해결해봐라" 하는데 무슨 포켓몬이 된 것 같았다). 그래도 염치가 있어서 군말없이 잘 따랐다. 혼자 여행도 왕왕 해봤던 덕분인지 웬만한 상황에서 절대 쫄지 않은 것도 한 몫 했다.
그런데 그게 마냥 좋지는 않은 것 같다. 부모님께서 아무런 고생도 신경도 안쓰시면 좋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게 부모님께 무력감 비슷한 뭔가를 느끼게 한 것 같았다. 돌아오는 날 공항에서 그런 속사정을 알았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비가 좀 그쳤길래 동네를 살짝만 돌았다. 뭔가 이 동네의 변한 곳을 발견하며 재밌어 하고 있는 날 보니 애매한 기분이었다.

만종역까지는 입석이었다. 한시간 남짓을 입석으로 갔던 건데, 좀 일찍와서 보조좌석을 선점했으면 좋았을 걸 동네 돌아다닌다고 늦게 와서 복도에 쪼그려 있었다. 그래도 책을 읽다 보니 나름대로 별로 힘들진 않았다.
요즘 창업에 관한 책을 많이 보고 있다. 어차피 겸직 금지 걸려서 직접 뭘 할 수는 없지만, 다른 자기계발서류의 책들 보다 훨씬 직설적이고 통찰도 좋다고 느끼는 까닭이다. 보통 (일반적인 기준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멋지다고 느끼지 않는가.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것저것 찾아 읽고 있다. 개인적으론 본업이 모니터를 하루종일 보는 일이다보니, 논문이나 책을 읽을 때는 e북이나 태블릿을 쓰지 않는 편이다. 웬만하면.

그래도 좌석으로 돌아왔을 땐 많이 행복했다. 아 서울 돌아갈땐 거의 입석인데 어떡하지

아무튼 도착했을 땐 이미 깜깜해진 뒤였다.
심지어 오늘 강원 영동지방엔 눈이 많이 내렸다. 이따 새벽에 더 온다고 하던데.

이번 여행의 컨셉은 "대중교통 이용하지 않기".
강릉이 궁금한 건 아니었다. 심심할 때마다 종종 오던 곳이라서 별로 색다를 것도 없었다. 오늘 가는 동네 말고도 여기저기 다녀봤다. 그래서 이번엔, 목적지보다 그 과정을 즐겨보기로 했다.
사실 환기가 필요했던 것도 있다. 전혀 모르는 동네를 걷는 것 만큼 쉽게 긴장할 수 있는 일이 잘 없다. 혹시나 길을 잘못 들진 않을까, 혹시 길이 내 예상과 다른 상태면 어떡하지, 등. 하지만 그래서 걷는 여행을 계속 하는 것 같다. 적당히 긴장하며 걷다 보면 머리 회전이 빨라져서 그런지 복잡한 생각이 더 잘 정리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마침 숙소까지 가는 길이 영원히 직진이라서 지도를 볼 필요는 없었다.

밤, 걷기, 강릉. 내겐 다소 낯선 단어의 조합이었다.
사진으로는 꽤나 밝아보이나 싶은데 걸으면서 느낀 건 작년에 혼자 일본 갔을 때 오비히로의 분위기와 뭔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낮엔 몰랐는데, 역전 도로 치고 은근히 도시가 어두웠다.
저녁 식사 때였지만 뭔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그냥 계속 걸었다. 서울에선 오늘 없던 눈이 쌓여 있으면서도 별로 춥지 않았던 것도 한 몫 했다.


지난 연말에 속초에 다녀 왔었다. 서울 사람들이 속초에 약간 별장 느낌으로 집을 사기 시작한 뒤로 브랜드 아파트도 많이 지어지고 집값도 엄청 비싸다고 하던데. 뭔가 남의 동네같았던 속초와 달리, KTX 역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혼자 종종 와서 그런지 훨씬 편한 느낌이었다.


확실히, 걷는 건 그 도시에 대한 인상을 새로 만들어준다.
강릉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솔직히 깨끗한 관광도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걸으면서 스쳐지나는 동네 주민분들을 보면서, 그리고 천천히 걸으면서 내가 여기 산다면 어떨지 상상을 해보는 것도 재밌었다. 나중에 다낭같은 휴양지에서 한 달 정도 살면서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해봤었는데, 그것보다 조금 더 현실적인 고민 겸 답사 비슷한 뭔가를 해봤달까.

또 하나 느꼈던 건 강릉 시내는 의외로 고깃집이 많다는 것이다. 솔직히 30분 넘게 걷다 보니 배가 슬슬 고파져서 끌리는 밥집이 있으면 먹고 들어갈까 했는데, 얼마 없는 식당이 하나같이 고깃집이라 포기했었다. 갑자기 늦게 출발한 덕에 기차에서 다이닝코드로 찾아본 식당들은 다 문을 닫았더라.



기안84 작가님의 유튜브는 작가님 방송과는 다르게 잔잔하면서도 놀라운 관찰을 보여줘서 요즘 종종 틀어놓는 편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직원분의 하루를 함께하고 있다. 작가님 수상소감의 네잎클로버 이야기가 참 작가님다워서 좋았던 듯
아무튼 작가님 유튜브에서 작가님이 전시를 보는 법을 들었다. 작품과 나 둘 사이에 아무것도 없이, 그냥 멍을 때리신다고. 뭔가를 인식할 때,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다른 생각 혹은 선입견 혹은 과거 등 머릿속에 있는 걸 빼고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데 참 어려운 것 같다.

블로그에 글을 쓰려면 사진을 찍어야 할 텐데, 사진을 찍으려면 걷다가 중간에 멈춰야 한다. 차를 타는 것과 걷는 것이 다르듯 걷는 것과 멈추는 것도 또 다르다. 되게 별 것 아닌데서 뭔가 영감을 받거나 배우곤 한다.
영감이라고 하니까 되게 있어보이는 척 하는 것 같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과학 하는 사람들한테 영감은 엄청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꼴값 아님 아무튼 아님

예전에 묵었던 호텔 보면서 걷다가, 옆에 뭔가 짓다 말았네 하면서 봤는데
ㅋㅋ

아무튼 그렇게 지도에서 한시간 반 찍히는 거리를 50분만에 도착했다.
익숙한 소나무 길을 걷는데 뭔지 모르게 꾸리꾸리한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여기도 관광지구나 싶긴 했다.



강릉에 혼자 올 때마다 오는 곳이다.
포장 전문점인데, 주문을 넣으면 그때부터 회를 떠주기 시작하셔서 미리 전화를 해보는 편. 네이버에 영업중이라고 되어 있어도 사장님께서 자리를 비우시는 경우도 있으니 미리 연락을 해보는 편이 좋다.
아무튼 현장감보다 숙소에 있는 걸 좋아한다면 나쁘지 않은 가격에 적당한 회를 즐길 수 있다.


회를 포장해서 숙소에 체크인 하러 가는 길.
바다가 미쳤다. 동해라고 해도 겨울엔 많이 성이 나있나 보다.
파도 소리를 들으러 온 게 큰데 그건 생동감 있어서 좋다. 소리가 디게 매섭다.



아무튼 바다 보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으니 뭐 할 것도 없이 체크인을 한 뒤,

저녁을 먹었다.
늦은 시간에 뭘 너무 많이 먹으면 더부룩해서 회 말고 다른 탄수화물은 사지 않았다.

사실 여행보다는 쉬러 온거라서 얘기는 여기서 끝이다.
내일부터는 적당한 카페를 찾아서 거기서 일을 할 예정이다. 본업에서 할 건 해야지.
프로젝트 문제로, 뭔가 어떤 상황을 수식으로 만들어서 증명을 할 수 있다면 굉장히 해피한 상황이 되는데, 강릉에 온 이유는 그걸 위해 환기를 좀 하기 위해서도 있다. 좋은 아이디어가 필요할 땐 일상에서 조금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바, 하루나 이틀 정도 방해 없이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까지 끄적끄적 해본 대로는 별로 잘 될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좋은 결과를 안고 서울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


오여정을 2년 정도만에 다시 봤다. 접때 느꼈던 사람 사이의 관계와 오늘의 기분은 또 달라서 처음 보는 것처럼 생각했던 게 많았다. 잃은 게 훨씬 많아진 지금은 지나가듯 했던 대사가 더 많이 들렸다. 씻으면서 배경음악처럼 켜두려고 했던 건데 어느 순간 집중해서 듣고 있더라.
"아무도 바라는 사람 없어도 나만은 내 편이기를."
적이 많았던 요즘 마음에 달고 살았던 말이다. 덕분에 조금 편해졌던 것 같긴 하다.
다음 여행은 이런 말이 필요없을 여행이길 바라며.
걸리적 여행기 강릉편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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